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태국 현대미술 전시가 내일(4월 20일)이 마지막이에요. 저도 오늘에서야 겨우 방문할 수 있었는데요, 태국 작가 24명의 작품 110점을 직접 보고 느낀 점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일곱 번째 국제문화교류전으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태국 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어요.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전시였어요. 무료 전시라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마지막 날인 내일, 발걸음을 옮겨보세요.
1. 동남아 미술과의 만남, 그리고 <꿈과 사유> 라는 구분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동남아시아 6개국 미술을 소개해온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어요. 이번 태국 전시는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거예요. 서구 중심의 미술 담론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백수미 이사장이 언급했듯이 유럽을 비롯한 서구 작가들의 작품과 달리,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은 아직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기 어렵거든요.
저는 평소 서양 미술만 주로 봐왔는데, 이번 전시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태국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국가인데요,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태국만의 독특한 색채와 정서가 작품에서 느껴졌어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태국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상징적인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아트까지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작품들을 보며 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었죠.
전시는 꿈과 사유라는 두 섹션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박일호 큐레이터는 모든 작가의 창작에는 감성과 이성이 모두 있다면서도 이렇게 구분했다고 해요. 솔직히 이 구분이 좀 억지스럽게 느껴졌어요. '꿈' 섹션에는 주로 젊은 작가들, '사유' 섹션에는 중견 작가들이 배치되어 있더라고요. 마치 젊은 작가들은 감성적이고 나이 든 작가들은 이성적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어요.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줄리 베이커 앤 서머의 '해바라기' 작품도 '꿈' 섹션에 있었는데, 작가는 할머니를 통해 여성의 권리와 페미니즘을 고민했다고 해요. 이런 사회적 성찰이 담긴 작품을 단순히 '꿈'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꿈'과 '사유'라는 구분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작품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적합한지도 의문이었어요. 한 작품 안에 두 요소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억지로 분리하면 작품의 깊이를 제대로 볼 수 없잖아요. 제1전시장에는 '꿈' 섹션을, 제2전시장에는 '사유' 섹션을 배치한 점도 두 영역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이나 대화를 제한하는 것 같았어요.
2. 불교 영향의 재해석과 인상적인 작품들
전시에서는 태국 현대미술의 불교적 영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보여주려 했어요. 태국은 국민의 95% 이상이 불교 신자라 미술에도 불교 영향이 크다고 하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 작품에서는 이런 경향이 약해진다고 설명했어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이게 단순히 약화가 아니라 변형과 재해석에 가까웠어요. 비 타끙 팟타노팟이라는 작가는 40년 동안 불교적 신앙과 연결해 작업해왔다고 하는데, Within-Without 이라는 작품에서는 인간의 몸과 우주의 유사성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있었거든요.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여전히 불교적 상징과 사유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단순히 종교적 영향의 약화로만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태국 현대미술에서는 종교적 영향의 변형과 재해석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세계성 사이의 복잡한 관계가 더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전시 작품들 중에서 특히 임하타이 쑤왓타나씬의 초승달 원숭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작가는 머리카락과 물고기 비늘로 고릴라를 표현하면서 환경 문제를 이야기했어요. 루프탑 동물원에서 방치된 고릴라를 보고 충격받은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작품 전면부는 인간의 머리카락으로, 후면부는 물고기 비늘로 제작됐다고 하는데, 이런 유기적이고 상징적인 재료 선택이 인상적이었어요.
차야퐁 짜루왓의 미니멀한 풍경화는 광활한 공간감과 고요함이 느껴져서 명상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작가는 평소 등산하고 명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자연에서 얻은 광활함을 하나의 은유로 표현했다고 해요. 그의 작품은 멀리서 볼 때는 디지털 작업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은은한 파스텔 톤의 색감이 어우러진 디테일한 페인팅이 돋보였어요.
콜라주칸토의 섬세한 종이커팅 설치작품도 인상적이었어요. 정교한 손길로 만들어진 작품은 섬세함과 공간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줬어요. 또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끄릿 띠라와닛의 작품도 볼 수 있었는데, 그는 타이 요리를 함께 만드는 등 공동체적 경험에 기반한 참여형 설치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예요.
3. 작가 선정과 전시 구성의 아쉬움
아쉬웠던 점은 유명한 작가들이 주로 '사유' 섹션에 몰려 있어서 작가들 사이에 위계가 느껴진다는 거예요. 전시에 참여한 24명의 작가 중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작가들이 '사유' 섹션에 집중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들이 '꿈' 섹션에 배치된 점은 이미 확립된 국제 미술계의 위계를 재생산하는 것 같았어요.
또 하나 궁금했던 점은 성별, 지역, 사회적 배경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작가들의 균형 있는 선정이 이루어졌는지였어요. 몇몇 작가들이 가부장제나 종교적 소수자 문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이런 관점이 전시 전체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어요.
태국이라는 특정 국가의 미술을 국가 단위로 소개하는 방식도 좀 아쉬웠어요. 이런 접근은 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층위와 복잡성을 단순화할 위험이 있거든요. 전시가 태국의 국가적 특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고유한 예술적 맥락이 국가 정체성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었고, 태국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이국적 요소를 부각시키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전시 관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110점이라는 많은 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한편으로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요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관람객에게 피로감을 줄 가능성도 있었어요. 전시 공간이 넓긴 했지만, 작품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집중해서 보기 어려운 면도 있었거든요.
4. 마지막 날 관람 안내와 종합적 평가
내일이 마지막 날이니, 관심 있으시면 꼭 방문해보세요. 무료 관람인 데다 QR코드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어요.
비록 전시 구성이나 작가 선정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 전시는 평소 접하기 어려운 태국 현대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어요. 특히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아우르는 110점의 작품을 통해 태국 현대미술의 풍부한 스펙트럼을 볼 수 있었던 점은 큰 장점이었어요.
무엇보다 서구 중심의 미술 담론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적 관점을 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태국 현대미술의 현재와 가능성을 조망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태국 작가들의 독특한 시선과 표현을 직접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마도 여러분도 저처럼 새로운 발견과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 날인 내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태국 현대미술의 세계를 만나보세요. 무료니까 부담 없이 들러보시길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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