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인디펜던트> 지에서 실린 기사 'The future of bananas is under threat'를 우연히 읽게 됐어요. 제목만 보면 언뜻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기사를 다 읽고 나서는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어요. 흔하디흔한 바나나 하나로, 제가 무심코 지나치던 문제들이 줄줄이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죠.
1. 바나나가 흔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말, 믿어지나요?
바나나는 마트에서도, 편의점에서도, 과일가게에서도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과일이에요. 한 손에 들고 껍질만 벗기면 먹을 수 있고, 가격도 늘 안정적이죠. 저도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일주일에 4~5개는 꼭 사먹는 과일이에요. 그런데 기사는 이 바나나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해요. 그것도 꽤 가까운 미래에요.
바나나가 기후변화로 죽어가고 있어요. 과테말라의 한 여성 농부가 한 말이에요. 그녀는 바나나 농장을 운영해왔지만, 기후가 너무 급격하게 변하면서 작물이 자라지 않고 있다고 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예상만 했던 일들이,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 말을 읽으며 처음으로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어요.
처음에는 또 환경 이야기구나 라고 가볍게 넘기려 했던 제 태도가 부끄러웠어요. 농부들이 찍은 사진, 농장 피해 현황, 점점 악화되는 통계 수치, 이런 것들이 모이니 갑자기 바나나가 그저 과일이 아니라 무언가의 신호처럼 느껴졌어요.
2. 기후위기가 작물에 미치는 영향, 바나나 사례로 보기
기사는 세계 바나나 생산량의 80%를 담당하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요. 이 지역의 바나나 재배지 중 약 3분의 2가 2080년까지 기후 조건에 맞지 않게 될 거라고 해요. 지금처럼 계속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면 말이죠.
바나나는 15~35도 사이의 온도에서만 잘 자라고, 무엇보다 '물 부족'에 매우 민감한 작물이에요. 그런데 극심한 가뭄과 강수 불균형으로 광합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병해충도 늘고 있어요. 특히 최근 등장한 퓨사리움 열대균 4형(Fusarium TR4)은 농장을 통째로 파괴할 정도로 심각해요. 병에 걸린 농장은 재배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리죠.
크리스천 에이드(Christian Aid)의 최근 보고서는 바나나뿐 아니라 여러 작물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해요. 기온이 1도만 올라도 바나나 생산성은 약 10% 감소하는데, 현재 전망대로라면 205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은 2도 이상 오를 수 있다고 해요. 간단한 계산만 해도 20% 이상의 생산성 하락이 예상되는 거죠.
또한 폭우와 허리케인 같은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잦아지면서 바나나 농장이 한순간에 물에 잠기거나 유실되는 사례도 늘고 있어요. 과테말라만 해도 지난 5년간 세 번의 대형 허리케인으로 바나나 농장의 30%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요.
3. 피해는 누가 받고, 책임은 누가 질까?
바나나가 귀해지면, 한국에서는 그냥 가격이 오르겠죠. 그러면 덜 사먹게 되고, 결국 다른 과일로 대체하면 돼요. 소비자인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기사에 나오는 농부들의 말은 좀 달라요. 그들은 작물이 죽으면 삶이 무너진다 고 말해요. 즉, 바나나는 그들의 생계예요.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생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막상 제 식탁에는 잘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그 연결고리는 명확해요. 산업화된 선진국이 기후를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그 피해는 더운 나라의 농민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삶을 잃는데, 누군가는 그냥 가격이 올랐다 고 느끼는 것. 그 불균형이 이제는 익숙해질 정도예요.
크리스천 에이드의 활동가는 이렇게 말해요. 기후위기의 책임은 산업국가에 있지만, 그 대가는 가장 취약한 지역사회가 치르고 있어요. 이것은 근본적인 정의의 문제입니다. 공정무역 기관들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요. 그들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기후재정 지원, 탄소 배출 감축, 공정한 무역 구조를 꼽아요.
바나나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의 경우, GDP의 15~25%가 바나나 산업에서 나와요. 한 작물에 경제가 의존하는 구조라 더 취약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나라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자원은 가장 적다는 점이에요.
4. 바나나 문제는 먹거리 시스템 전체의 경고
사실 바나나는 시작에 불과해요. 세계식량기구(FAO)는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 수십 개 주요 작물이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해요. 커피는 2050년까지 생산 적합 지역의 50%가 사라질 수 있고, 코코아 생산지는 2050년까지 9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해요. 우리가 즐겨 먹는 쌀도 기온 상승에 민감해 생산량 감소가 예상되고, 지중해의 올리브 농장들도 심각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먹거리 시스템이라는 말이 더는 멀게 느껴지지 않아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안에 있고, 그 시스템은 기후에 깊이 의존하고 있어요. 또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산업형 농업은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해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0%가 식품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해요.
문제는 이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모두가 영향을 받지만 그 타격은 똑같지 않다는 거예요. 생산자는 생계를 잃고, 소비자는 가격 상승을 경험하게 되죠. 그리고 이미 식량 불안정을 겪고 있는 취약 계층은 더 심각한 영향을 받게 돼요.
5. 한국 소비자로서 느끼는 거리감과 책임감 사이
솔직히 말하면, 마트에서 바나나를 살 때 환경 이나 생산자 를 떠올린 적이 거의 없어요. 그냥 노란색, 가격, 그리고 얼마나 익었는지만 봤죠. 하지만 이제는 과일 하나를 고르는 행위가 어떤 시스템을 지지하는지 고민하게 돼요.
한국은 바나나 소비국 중 하나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1인당 연간 약 13kg의 바나나를 소비한다고 해요. 필리핀, 에콰도르, 과테말라 등에서 수입한 바나나가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어요. 그런데 이 바나나의 여정과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아요.
현대 사회에서 먹는 행위 자체가 선택이자 태도가 된다는 것을 실감해요.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행위는 어떤 생산 방식을, 어떤 무역 구조를, 어떤 환경 영향을 지지할지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6. 소비자로서 실천 가능한 몇 가지 제안
공정무역(Fairtrade) 마크가 붙은 제품을 고르는 건 단순히 좋은 일 을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요. 이는 어떤 방식으로 생산된 것인지, 어떤 구조 안에서 거래되는지에 대한 우리의 입장 표명이기도 해요. 공정무역재단(Fairtrade Foundation)은 이렇게 말해요. 공정한 가격을 보장받지 못하면, 바나나 농가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낯설지 않았어요. 공정무역 바나나를 처음 봤을 때는 뭐가 다른 건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고르게 돼요. 모든 소비가 윤리적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제가 알고 있는 선택지 안에서는 그 구조를 고민해보게 돼요.
제철 과일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장거리 운송에 의존하는 식품은 그만큼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니까요. 계절에 맞는 국내산 과일을 선택하면, 식탁의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어요.
바나나 가격이 오를 때, 왜 오르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해요. 단순히 경제 논리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뒤에 있는 기후 상황, 생산지 문제 등을 고려해보는 거죠. 조금 더 비싸더라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식품을 선택하는 소비 습관이 중요해요.
기후위기와 농업 관련 뉴스를 꾸준히 체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농산물 위기에 관한 정보를 주변과 공유하고, 기후행동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에요.
결국 이 기사 하나가 제게 던진 질문은 단순해요. 지금, 어떤 시스템 위에서 먹고 있는가? 누군가의 삶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제가 무관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바나나는 시작일 뿐이라는 것. 커피, 코코아, 쌀, 올리브유 같은 다른 작물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잊지 않게 됐어요.
기후위기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아주 작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그게 바나나의 부재라는 형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좀 섬뜩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작은 실천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희망도 함께 보게 됐어요.
✅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5가지
- 공정무역(Fairtrade) 마크가 붙은 바나나 제품 고르기
- 바나나를 소비할 때, 생산지에 대해 한 번 검색해보기
- 기후위기 관련 기사 공유하기 (특히 농업 피해 사례 중심)
- 제철과일 소비 늘리기 (장거리 운송 부담 줄이기)
- 마트에서 바나나 가격이 오를 때,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보기
바나나 하나의 무게는 가볍지만, 그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아요. 내일 아침, 바나나를 집어 들 때 잠깐이라도 그 뒤에 있는 세계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더 나은 먹거리 시스템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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